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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초록 낙엽, 나무 시계를 고장 낸 범인은 누구인가

작성일 : 2023.11.27 조회 : 2310

초록 낙엽, 나무 시계를 고장 낸 범인은 누구인가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온난화가 없었다면 단풍의 시작 시기가 늦춰지지 않았을 것이고 초록색 낙엽을 볼 일 또한 없었을 것이다
지금 생태계 변화는 사계절의 경계가 사라지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간다면 단순히 옷을 갈아입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반드시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탄소중립을 이루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우리는 삶의 방식을 전환해야 하는 더 큰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며칠 전에 길을 걷다가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길에 떨어진 은행나무 낙엽이 노란색이 아니라 초록색이었다. 눈을 의심할 정도로 푸르른 나뭇잎들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아마 많은 분이 나처럼 당황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단풍의 시작 시기가 늦어져 11월 초가 되었음에도 은행나무 잎이 노란색으로 변하지 않은 것도 신기한데 이제는 초록색 은행나무 낙엽이 바닥에 깔린 것이다. 도대체 나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누가 나무의 시계를 망가트린 것일까. 지금부터 나무의 시계를 고장 낸 주범을 찾아보려 한다.

한국이 위치한 온대지역의 낙엽활엽수(계절 변화를 하는 잎이 있는 나무)는 일정량의 추위를 경험하면 단풍이 시작되고 이어서 낙엽을 떨어트린다. 보통 종마다 다르지만,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면서 일조량이 줄어드는 시점부터 특정 기온 이하의 추위를 감지하기 시작하고 일정량의 누적된 추위까지 견디다 본인의 한계를 넘어가면 광합성을 멈추고 색이 변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렇게 나무가 인지하는 추위를 Cooling degree day(냉방도일)라고 한다. 사실 냉방도일이란 용어는 에너지 분야에서 여름철 에어컨 이용과 관련한 수요예측에 많이 사용되어 헷갈릴 수도 있지만 영어가 같기에 여기서는 같은 용어로 표기하겠다. 더위를 식혀주는 에어컨 같은 경우 특정 온도보다 높은 날이 많으면 결국 에너지를 많이 쓰는 것이지만, 나무의 냉방도일 같은 경우 특정 온도보다 낮은 경우만 고려하는 개념이라 정반대이지만 용어가 같다. 하나의 용어이지만 인간과 나무는 다르게 사용하고 있어야 한다.

그럼 나무의 단풍이 시작되는 시기에 대해 좀 더 살펴보겠다. 예를 들어 특정 나무가 3도 이하의 추위를 기피하고 단풍에 필요한 총 냉방도일이 -50이라고 했을 때, 나무는 3도보다 낮은 날 기온을 감지하여 누적하기 시작한다. 일조시간이 특정 시간 이하로 줄어드는 날(예 8월20일)부터 매일 3도보다 낮을 경우를 인지하기 시작하는데, 만약 다음날(8월21일)이 2도면 2-3=-1, 그리고 다음날(8월23일)이 4도면 3도보다 크기 때문에 0, 또 다음날(8월24일)이 -1도면 -1-3=-4, 그래서 지금 3일간 -5가 냉방도일로 축적되었고 이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가면서 더해지는 값이 -50에 도달되면 단풍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래서 만약 늦여름이나 가을에 기온이 높으면 3도 이하인 날의 수가 줄어든다는 뜻이기 때문에 단풍이 필요한 냉방도일에 늦게 도달하게 된다. 그래서 온난화와 같은 기후변화가 단풍의 시작 시기를 늦추고 있다. 최근 들어 왜 이렇게 단풍 시작이 늦은지 궁금했던 분들은 이제 답을 찾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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